Home
Member Only

Member Only

한양대관리자 2012.02.18 과학동아 6월호 draft 원문 - 외부 공개 금지!
조회수 911

페이지 정보

본문

뇌신경의 회로도를 그린다!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

#

“제 뇌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시상과 브로드만 영역 28번을 연결하는 48273번 신경회로, 해마와 섬엽을 연결하는 2982번 신경회로에 이상이 발견됐습니다. 요즘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환청이 들리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우리 병원에서 최근에 개발한 연결성 강화 유전자 치료를 받으시면 나으실 수 있습니다. 줄기세포 치료를 받으실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30년 뒤, 한 대학병원의 신경과에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오갈 수도 있는 대화의 일부이다. 앞으로 사람의 유전자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것처럼 뇌의 다른 부분들을 연결하는 신경회로망을 분석해서 뇌의 이상을 알아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2000년대 초반, 과학 기술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 받는 인간 유전자 지도인 인간 게놈 지도가 만들어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첨단 의학 영상 기술과 컴퓨터의 힘을 빌려 뇌의 연결성 지도인 인간 커넥톰 지도를 만들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인간 뇌의 궁극적인 비밀을 열 수 있는 열쇠로 평가받는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에 대해 알아보자.


Q1. 언제부터?


1800년대 말 독일의 신경학자인 브로드만은 현미경과 수술용 매스만을 이용해서 인간의 뇌에서 서로 다른 세포 구조를 가지고 있는 영역 52개를 분류해 냈다. 브로드만 지도라고 불리는 이 지도는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뇌를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기 위한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브로드만이 분류한 영역들은 각기 고유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고 다른 영역들과 협동을 하거나 때로는 다른 영역의 활동을 억제하기도 한다. 사람의 뇌는 종종 컴퓨터에 비유된다(물론 뇌가 훨씬 더 복잡하지만). 컴퓨터에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는 사람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해당하며, 정보를 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는 전전두엽, 그래픽 카드는 시각 피질, 오디오 카드는 청각 피질에 대응한다. 컴퓨터에서 여러 부품들이 복잡한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뇌에서도 여러 부위들이 복잡한 신경회로로 연결되어 있다. 가까운 신경세포끼리는 시냅스로 연결돼 있고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끼리는 신경섬유 다발로 연결돼 있다.

뇌의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첨단 신경영상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뇌의 개별 영역들이 가진 기능에 대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지만 뇌가 만들어 내는 인간의 복잡한 사고, 기억, 판단, 인식, 의식 등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52개의 브로드만 영역은 턱없이 부족하다. 뇌과학자들은 사람의 복잡한 인지 과정이 어쩌면 뇌의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활동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경세포들 사이에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성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바로 공초점레이저 주사현미경의 개발자이기도 한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의 존 화이트 교수다. 1986년 화이트 교수는 c. elegans라는 1 mm 크기의 선충의 뇌에 있는 302개 신경세포 사이의 모든 연결성을 찾아 지도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신경세포의 수는 302개에 불과했지만 각 신경세포들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연구팀은 7000개가 넘는 연결쌍들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해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만 했고 결국 이 작은 선충의 완전한 커넥톰을 알아내는데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Q2. 어디까지 왔나?


사람의 뇌에는 c. elegans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의 수 보다 수십억배나 많은 10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들이 있고, 신경세포들 사이의 시냅스 연결만도 100조개 이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서 13년 만에 완전 해독에 성공한 염기서열의 쌍이 총 30억 개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분석 기술로는 인간의 완전한 뇌 연결성 지도를 알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연결성 정보를 저장하는 데에 필요한 컴퓨터 용량만 수 페타바이트(Pbyte = 1024 Tbyte)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뇌과학자들과 뇌공학자들은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해 냈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좁은 뇌 영역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성 지도를 만드는 일과 거시적인 관점에서 뇌 영역들 사이의 연결성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함께 진행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양자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임무는 계산 신경과학자들에게 주어졌다. 이런 연구는 개별 연구자들이 수행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연구이기 때문에 2005년에는 드디어 세계적인 뇌과학자와 뇌공학자들이 모여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라는 21세기형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인간 커넥톰을 밝히는 연구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뇌영상 기술의 놀라운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생체공학자들은 멀리 떨어진 신경세포들을 연결하는 신경섬유 다발의 구조를 뇌를 해부하지 않고도 MRI 기계만을 이용해서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확산텐서영상(DTI)이라고 불리는 이 새로운 영상 기술을 통해 MRI 기계에 30분 정도 누워있는 것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뇌신경 회로도를 그려낼 수 있게 됐다. 이 분야 연구에 있어 우리나라 뇌공학자들의 연구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다. 뇌영상 분야에서 국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한양대학교 이종민 교수 연구팀은 2011년 이 기술을 이용해서 인지장애를 가진 환자들이 정상인과 비교해서 뇌 영역 사이의 연결성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기도 했다.


Q3. 미래는?


뇌과학자들은 확산텐서영상을 통해 찾아낸 각각의 신경섬유 다발이 우리 뇌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뇌의 두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연결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모른다면 쓸모없는 정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뇌파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에서 얻어진 기능적인 연결성 정보에 의존해 왔지만 앞으로는 더욱 정확한 정보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최근 신경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광유전학(optogenetics)이라는 기술을 사용하면 빛을 이용해서 특정한 신경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자극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해서 관심 있는 신경세포를 자극했을 때 반응하는 다른 신경세포들을 추적하면 더욱 정밀하게 신경세포들 사이의 기능적인 관계를 알아낼 수 있다.

신경과학의 놀라운 발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인간 뇌의 모든 연결성을 알아내서 완전한 커넥톰 지도를 그리는 것은 앞으로도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커넥톰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뇌영상 기술이 발전하게 되고 인간의 뇌와 뇌에 생기는 질병들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뇌의 이상을 특정한 뇌 영역의 이상이 아니라 뇌 신경회로망의 이상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자폐증, 정신분열증, 파킨슨씨병과 같은 뇌질환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신경외과 수술에 있어서도 뇌의 특정 부위를 잘라내는 수술 대신 신경섬유 다발을 끊어주는 수술 기법이 발전하고 있다. 먼 미래에는 우리 뇌의 잘못된 연결이나 끊어진 연결을 재생시킬 수 있는 유전자 치료나 줄기세포 치료 방법이 개발돼서 뇌질환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