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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관리자 2012.02.18 과학동아 5월호 draft 원문 - 외부 공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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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뇌를 조절한다!

뉴로피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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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면에 마릴린 몬로와 조쉬 브롤린의 사진이 겹쳐 있는 것이 보이시죠? 지금부터 조쉬 브롤린을 보고 싶어 하면 사진이 조쉬 브롤린으로 변할 것이고 마릴린 몬로를 보고 싶어 하면 마릴린 몬로가 나타날 거예요. 준비 되었나요? 그럼 사진을 마릴린 몬로로 바꿔 보세요.”


MRI 안에는 뇌전증(간질) 수술을 받기 전의 환자가 누워서 작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잠시 후, 겹쳐진 사진은 점점 마릴린 몬로의 사진으로 변했다.


위 상황은 2010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커프 박사 연구팀이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발표한 실험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뇌전증 수술을 받기 전에는 보통 환자의 두개골을 절개하고 뇌에 전극을 넣어 신경신호를 측정하게 되는데 이들 환자들에게 유명 헐리우드 배우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한 환자는 조쉬 브롤린 사진을 보았을 때 오른쪽 해마(hippocampus) 부위가 반응하고 마릴린 몬로 사진을 보았을 때 왼쪽 해마옆이랑(parahippocampal gyrus) 부위가 반응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이 연구에서 얻어 낸 결론은 어느 쪽 해마에서 신호가 나오는가를 알아내면 어떤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이 연구의 의미는 이 방법을 잘 응용하면 뇌의 어떤 부위를 자기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는 뇌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 오른쪽 해마 부위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면 그 부위에 직접 전류를 흘려주어야 했지만 앞으로는 어쩌면 수술을 하지 않고 단지 조쉬 브롤린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Q1. 언제부터?


자기 스스로 뇌를 조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뇌파 분야에서 먼저 제기됐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경 신호를 측정하는 뇌파는 신호에 포함된 주파수 대역에 따라 델타, 쎄타, 알파, 베타, 감마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뇌질환이나 감정 상태에 따라 이들 주파수 성분이 변한다는 것은 매우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 측정한 뇌파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피드백(그림이나 소리, 동영상 등)을 주면 스스로 원하는 뇌파로 조절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뉴로피드백(neurofeedback)’이라고 알려진 자가 뇌조절 기술의 원리이다. 뉴로피드백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 UCLA의 스터먼 박사는 1971년 뇌의 운동영역에서 발생하는 SMR파라는 뇌파를 뇌전증 환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조절하도록 하여 발작을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뉴로피드백 치료가 자폐,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투렛증후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같은 다양한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데 우수한 효과가 있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 분야의 대가 중 한명인 캐나다 ‘신경치료 및 바이오피드백 클리닉’의 폴 스윈글 박사는 2008년 자신의 저서에 뉴로피드백을 이용해서 ADHD 환자들을 치료한 자신의 경험을 기록했다. 우선, 스윈글 박사는 ADHD가 있는 아이들에게서 측정된 뇌파에는 정상 뇌파보다 특정한 주파수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이 아이들에게 영화 <토이 스토리>를 보여주다가 뇌파에서 그 특정 주파수 성분이 커지면 영화 플레이를 중단하는 단순한 피드백을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계속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뇌파를 조절해서 영화가 끊어지지 않고 보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 돌아가서도 치료를 받기 전에 비해 주의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보였다.


Q2. 어디까지 왔나?


이처럼 오랜 기간에 걸친 수많은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뇌파를 이용한 뉴로피드백은 주류 뇌과학, 뇌공학 분야에서 아직까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뉴로피드백 연구자들이 어떠한 원리로 자기 뇌파를 조절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뉴로피드백의 효과 자체는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 효과의 많은 부분이 플라시보 효과(위약효과 - 효과가 없는 약을 감기약이라고 믿고 먹었는데 감기가 낫는 효과)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에 뇌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가뇌조절 또는 자기치유 기술의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은 이 분야 발전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다. 특히, 영상처리 기술과 컴퓨터 시스템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실시간으로 뇌 활동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실시간 fMRI 기술이 개발돼 더욱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졌다. 2010년 독일 튀빙겐 대학의 안드레아 카리아 박사는 실시간 fMRI를 이용해서 실험 대상자가 뇌의 오른쪽 섬엽(insula)의 활동을 스스로 조절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뇌의 섬엽은 화난 얼굴이나 역겨운 대상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 자극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뇌 부위로 잘 알려져 있다. 실험 대상자들에게 섬엽의 활동 정도를 막대그래프로 보여주면서 스스로 섬엽의 활동을 높이는 훈련을 계속했더니 놀랍게도 똑같은 자극에 대해서 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Q3. 미래는?


자가 뇌조절 기술에 대한 신경과학적인 증거들이 계속해서 쌓이게 된다면 앞으로 이 기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보다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PLX 디바이스라는 회사에서 판매하고 있는 X-Wave라는 장치는 착용이 매우 쉬운 휴대용 뇌파측정 헤드셋을 무선으로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뉴로피드백 훈련을 가능하게 한다. 시험공부를 하기 전에 집중력을 높이고 싶거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이 헤드셋을 머리에 쓰고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집중력이 높아지거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뇌 상태로 조절하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이런 종류의 휴대용 뉴로피드백 장치가 좀 더 대중화된다면, 신경학습이나 뇌학습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학습 방법이 나타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교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모두 무선 뇌파 헤드셋을 착용하고 있고, 선생님은 교탁에 있는 컴퓨터로 학생 개개인의 주의 집중도와 이해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그때그때 뉴로피드백을 이용해서 집중도를 향상시키는 장면이 10년 뒤, 미래 교실의 모습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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