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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관리자 2012.02.18 과학동아 3월호 draft 원문 - 외부 공개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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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거짓말을 못한다

진실을 말해주는 M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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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은 해고입니다.”

“도대체 제 해고 사유가 뭐죠?”

“지난주에 받은 정기 MRI 검사에서 회사 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가 포착되었습니다. 경찰 조사도 받게 되실 겁니다.”

“말도 안돼요. 저는 결백합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받는 사회는 절대 실현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위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2006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설립된 ‘No-Lie MRI’라는 회사는 MRI를 이용해 고객의 진실을 증명해주는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설립자인 조엘 후이젠가 사장은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하면 100%에 가까운 정확도로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 암시를 걸거나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 심지어는 거짓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연습을 하는 것도 다 소용 없어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뇌는 거짓말을 못하거든요.” 실제로 이 회사에는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600만원이나 하는 거금을 들여서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뇌공학자들은 기계로 인간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거짓말까지 읽어내려고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무서워 보이기도 하는 이 기술을 뇌공학자들은 왜 연구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Q1. 언제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전통적인 거짓말탐지기는 우리가 거짓말을 할 때, 심장 박동 수, 혈압, 호흡 주기 등이 변하는 현상을 측정해서 거짓말을 탐지한다. 이 기계는 19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의대 학생이었던 라르손씨가 처음 발명한 이후 과연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점에서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어 왔다. 실제로 사람의 생리적인 반응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거짓말탐지기는 20-30%에 달하는 높은 오차율을 가진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다.

거짓말탐지기에 뇌의 반응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의 로렌스 파웰 박사가 ‘뇌 지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면서 부터이다. 파웰박사가 제안한 방법은 사람 뇌에서 발생하는 P300이라는 뇌파 성분을 측정한다. P300은 어떤 사람에게 비슷한 종류의 (시각 또는 청각) 자극들을 제시하다가 드문드문 다른 종류의 자극을 섞어서 제시할 때 300 ms(=1/1000초)에서 발생하는 특이한 뇌파 패턴이다. 이 뇌파는 범죄 수사 과정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데, 용의자에게 낮선 장면들을 보여주다가 범행현장의 장면을 보여주면 범인의 뇌는 이 장면을 (종류가 다른) 익숙한 자극으로 인식해서 P300을 발생시키지만 범인이 아닌 용의자의 뇌는 이 장면을 (기존 자극과 비슷한) 낮선 자극으로 받아들여 P300을 발생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기술은 미국 CIA, MI6와 같은 정부기관에서 범인이나 테러리스트를 가려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Q2. 지금은?


뇌파를 이용하는 ‘뇌 지문’ 검사 방법은 정확도가 100%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범죄 수사 등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더욱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이 가능하면서도 높은 정확도를 가지는 거짓말탐지기는 인간의 뇌 활동을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술이 발명되면서 가능해지게 되었다. 인간의 뇌 활동을 MRI를 이용하여 볼 수 있다는 사실은 1990년대 초에 이미 발견되었지만 초기 연구자들은 이 기술을 이용해서 뇌의 어느 부위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알아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와 영국 셰필드 대학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서 사람이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말을 할 때 활동하는 뇌 부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할 때에는 진실을 말할 때보다 대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동이 더 증가한다. 이곳은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컴퓨터로 말하면 CPU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위로 잘 알려져 있다. 이론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뇌 활동 영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면 인간의 거짓말을 담당하는 특정한 신경 중추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실제로는 거짓말을 할 때, 반응하는 뇌의 부위들이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 방법은 오히려 거짓말탐지의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비록 개인별로 차이는 있어도 거짓말을 할 때와 진실을 말할 때의 뇌의 반응이 다르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에 뇌공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에게 답을 알고 있는 여러 개의 질문을 던져준 다음에 진실을 말할 때와 거짓말을 할 때의 뇌 반응 지도를 미리 저장해 둔다. 그런 다음 거짓말을 알아내기 위한 본 질문을 던졌을 때 나타나는 뇌 반응과 미리 저장된 반응을 패턴인식 기술을 이용하여 비교하면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스티븐 레이큰 박사는 이런 방법을 이용해서 97%의 높은 정확도로 거짓말을 탐지해낼 수 있었다.


Q3. 어디까지?


복잡한 3차원의 뇌 영상 패턴을 분석하고 분류해낼 수 있는 다중복셀패턴분석(MVPA)이라는 기술이 개발되고 실시간으로 뇌 영상을 얻어낼 수 있는 실시간 MRI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뇌 영상을 이용하는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와 속도가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이제 뇌공학자들은 이 기술을 법정에서의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법원을 설득하고 있다. 비록 마지막 남은 3%의 오류 가능성 때문에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더욱 정확한 뇌 영상 분석 방법이 개발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뇌 영상을 이용하는 거짓말탐지 기술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부 기관은 바로 군대이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은 적군을 고문하는 영화 속 장면은 이제 MRI 기계 속에 누워 있는 적군 포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면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뇌 영상을 이용한 거짓말탐지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 결백한 사람들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좋은 도구로 쓰일 수도 있겠지만 글머리에 보인 상황처럼 사회 정의 구현이라는 미명 하에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도구로 쓰일 가능성도 물론 있다. 내가 믿고 있는 사람들이나 나의 애인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혹은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꼭 유쾌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신경과학자들은 신경과학과 뇌공학이 발전하면서 생겨날 수 있는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들을 예상하고 적절한 해결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신경윤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첨단 뇌공학 기술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신경윤리학자들이 좋은 길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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